라이노쉴드 X 반 고흐 미술관 버추얼 투어

우리가 과감하게 나서지 않는다면, 삶은 어떤 모습일까?
– 빈센트 반 고흐, 1881년 12월 29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반 고흐 미술관 온라인 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라이노쉴드의 새로운 케이스 컬렉션에 담긴 영감의 원천을 소개하고, 빈센트 반 고흐의 세계와 예술 여정을 함께 탐험해보려 합니다.
라이노쉴드 x 반 고흐 미술관 컬렉션은 반 고흐처럼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담기 위해, 우리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세 시점을 대표하는 서로 다른 화풍의 작품들을 선택했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반 고흐가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실험하며 그만의 상징적인 스타일을 어떻게 완성해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단 10년, 1880년부터 18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만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엄청났습니다. 이 10년 동안 그는 약 850점의 회화 작품과 1300점 이상의 드로잉을 남겼고, 그 외에도 수많은 수채화, 석판화, 편지 속 스케치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평생 동안 동생 테오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에게 편지는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반 고흐의 삶과 배경, 그가 보고 읽고 생각했던 것들 대부분은 바로 이 편지들, 즉 그의 ‘자서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 고흐는 대부분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였습니다. 몇 권의 교과서와 브뤼셀·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짧은 수업, 미술관 관람, 예술가 친구들의 조언 등을 통해 그는 스스로 그림을 익혀나갔습니다. 현대 프랑스 미술에 대한 접촉은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하도록 자극을 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만의 강렬하고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그의 그림은 생동감 있는 붓질과 선명한 색감으로 표현되며,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의 극적인 삶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연애, 세간의 인정 부족, 정신적 고통과 병,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이야기는 작품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예술가
이번 컬렉션의 일부 디자인에는 주요 작품 외에도 반 고흐의 자화상나 대표적인 그림이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예술가였는지, 그리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그림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고, 나도 그 말을 기꺼이 믿어. 하지만 자신을 그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9월 5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반 고흐는 1887년에서 1888년 겨울, 파리에 머문 지 거의 2년이 되었을 때 이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작품에서 그는 점묘법(Pointillism) 기법을 연구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응용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짧은 붓질을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해, 머리 윤곽을 따라선 부분에서는 일종의 후광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그림은 파리 시절 반 고흐가 시도한 가장 대담한 색채 실험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는 긴 붓터치를 활용해 보색인 파랑과 주황을 배경에, 빨강과 초록을 수염과 눈에 나란히 배치해 서로의 색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빨간색 안료가 바래면서 본래 보라색이었던 붓터치는 지금은 파란색으로 변해, 노란색과의 대비가 이전보다 덜 강렬해졌습니다.
Courtesan (after Eisen)
기생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일본 화가 게이사이 에이젠의 목판화에 바탕을 두고 그렸습니다. 이 목판화는 1886년 잡지 「Paris illustré」 표지에 실린 바 있었습니다. 반 고흐는 그리드 방식을 사용해 일본 인물을 확대·복사했으며, 목판화처럼 선명한 윤곽선과 밝은 색채를 사용했습니다.
여성의 헤어스타일과 기모노 앞쪽에 묶인 오비(띠)를 통해 그녀가 기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 고흐는 그녀를 연못, 수련, 대나무 줄기, 두루미, 개구리로 둘러싸 표현했는데, 이 장면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프랑스어 속어로 두루미(grue)와 개구리(grenouille)는 ‘매춘부’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Head of a Skeleton with a Burning Cigarette
담배 피는 해골


담배에 불을 붙인 이 해골 그림은 청춘의 장난기 어린 유머를 담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1886년 초,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해부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해골을 그리는 것은 아카데미에서 기본적인 연습 과제였지만, 해골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정규 수업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반 고흐는 수업 시간 외에 틈틈이 이 작품을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Skull
해골


해골은 보통 단색으로 표현되지만, 반 고흐는 이 작품에서 다양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해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반 고흐가 이 컬러 스터디를 그리면서 품었던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두껍게 칠한 흰색 물감을 지그재그로 사용해 해골의 반짝이는 표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Bridge in the Rain (after Hiroshige)
비 오는 다리


반 고흐는 일본 목판화의 선명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이 ‘비 오는 다리’ 그림은 유명한 일본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다만 반 고흐는 원본보다 색을 훨씬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표준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원본 판화의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테두리를 남겼습니다. 그 테두리에는 다른 목판화에서 본 일본어 글자를 따라 그려 넣어 완성했습니다.
The Pink Peach Tree
분홍색 복숭아 나무


반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서 머문 첫 몇 주 동안 많은 과수원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에는 거의 동일한 이전 버전이 있는데, 반 고흐는 그 작품을 한 번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는 “야외에서 20호 캔버스에 작업했는데, 갈라진 연보라빛 들판과 갈대 울타리, 그리고 찬란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한 두 그루의 분홍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아마 내가 그린 풍경화 중 최고일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혼인으로 인해 삼촌이 된 화가 안톤 모브(1838-1888)의 사망 소식을 접했습니다. 모브는 반 고흐가 한때 그림을 배운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반 고흐는 그 첫 작품을 모브에게 헌정했고, 이 새로운 버전을 나중에 동생 테오에게 보내기 위해 다시 그렸습니다.
Sunflowers
해바라기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는 1888년과 1889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이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반 고흐는 총 다섯 점의 큰 캔버스에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노란색 계열 세 가지 색상만 사용해 ‘다른 색은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가지 색의 다양한 변주만으로도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해바라기 그림은 반 고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들이 ‘감사’를 전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첫 두 점을 친구이자 화가인 폴 고갱의 방에 걸었는데, 고갱은 잠시 함께 살기 위해 옐로우 하우스에 머물던 중 이 해바라기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완전히 반 고흐답다”고 평했습니다.
고갱이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이미 새로운 버전을 그렸고, 고갱은 나중에 선물로 한 점을 요청했으나 반 고흐는 선뜻 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반 고흐는 두 점의 자유로운 사본을 제작했는데, 그중 한 점은 현재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Almond Blossom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이렇게 큰 꽃 가지는 반 고흐가 특히 좋아한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아몬드 나무는 봄 초기에 꽃을 피워 새로운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반 고흐는 이 작품에서 일본 목판화에서 볼 수 있는 주제, 굵은 윤곽선, 그리고 나무가 화면에 배치된 방식을 차용했습니다.
이 그림은 막 아들 빈센트 빌렘을 낳은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조에게 선물한 작품입니다.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편지에서 테오는 “말씀드렸듯이 아기 이름을 당신을 따서 지었고, 당신처럼 결단력 있고 용감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이 작품은 반 고흐 가족에게 특히 소중한 작품으로 남았으며, 빈센트 빌렘은 나중에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Irises
붓꽃


반 고흐는 이 정물화를 프랑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렸습니다. 그에게 이 그림은 주로 색채 연구의 의미가 컸습니다. 그는 강렬한 색 대비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보라색 꽃을 노란 배경 위에 배치해 장식적인 형태가 더욱 돋보이도록 표현했습니다.
원래 아이리스 꽃은 보라색이었으나, 붉은색 안료가 바래면서 지금은 푸른색으로 변했습니다. 반 고흐는 이 꽃다발을 주제로 두 점의 정물화를 그렸으며, 다른 작품에서는 보라색과 분홍색을 초록색과 대비시켰습니다.
Wheatfield with Crows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 그림은 반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종종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더 그렸습니다.
위협적인 하늘, 까마귀, 막다른 길은 그의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지만, 이는 널리 퍼진 신화일 뿐입니다. 반 고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 아래의 밀밭을 통해 ‘슬픔과 극도의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생각한 ‘건강하고 힘을 주는 시골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반 고흐는 강렬한 색상 대비를 사용했습니다. 파란 하늘은 노란빛 오렌지색 밀밭과 대비되고, 빨간 길은 초록색 풀밭과 맞닿아 더욱 선명하게 돋보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빈센트 반 고흐는 20세기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후기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예술 여정 동안 다양한 영향들을 흡수하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어, 단순한 일상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초상, 일상적인 사물, 풍경 등 매우 혁신적인 작품들을 창조해 냈습니다.
전설적인 화가 반 고흐를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하는 라이노쉴드 x 반 고흐 미술관 콜라보레이션 2차 컬렉션은 빈센트 반 고흐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그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작품들과 더불어, 모네, 르페르, 호쿠사이, 히로시게 등 반 고흐의 예술과 시각 표현에 깊은 영향을 준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입니다.
Montmartre: Windmills and Allotments
몽마르트의 풍차와 시민농장몽마르트의 풍차와 시민농장


파리에서 반 고흐는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자리한 그림 같은 풍차들을 자주 그렸습니다. 당시의 몽마르트는 아직 부분적으로 전원 풍경을 간직한 지역으로, 텃밭과 농장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주제가 잘 팔리기를 기대했습니다. 반 고흐는 밭의 흰색과 창고의 밝은 파랑 같은 맑고 순수한 색감을 동시대 프랑스 미술에서 가져왔습니다.
햇빛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유화를 매우 묽게 희석해 투명하고 무광택의 효과를 연출했습니다. 또 일반적이지 않은 길고 가로로 긴 캔버스를 선택해 광각 렌즈로 본 듯한 시각적 인상을 주었습니다. 화면 속 오솔길과 텃밭이 부채꼴로 펼쳐지며 보는 이의 시선을 지평선 너머로 이끕니다.
Kingfisher by the Waterside
물총새


이 물총새는 물가에 앉아 물고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실제 박제된 물총새를 소장하고 있었으며, 그 표본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과 박제를 비교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는 그림에서 새의 꼬리를 약간 더 길게 그렸는데, 이는 위로 향한 부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갈대 줄기에 앉아 있는 모습에 맞게 새의 발도 추가했습니다. 또한, 이 물총새의 화려한 푸른 깃털은 실제보다 다소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Sprig of Flowering Almond in a Glass
유리컵에 꽂힌 아몬드 꽃


붉은 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작품을 나눕니다. 반 고흐는 이 작은 꽃 피운 아몬드 나뭇가지 그림에 서명할 때도 같은 붉은색을 사용했습니다. 아몬드나무는 봄이 시작되며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반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도착했을 당시, 땅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조금 지난 3월 2일,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여긴 아직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고, 시골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어. 나는 마을이 배경으로 보이는 눈 덮인 풍경을 하나 스케치했어. 그리고 이런 날씨 속에서도 꽃을 틔운 아몬드나무 가지를 보고, 작은 그림 두 점으로 담아봤어.”
그 이후 반 고흐는 꽃이 피는 과수나무들을 주제로 한 대형 연작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몬드, 복숭아, 자두, 배나무 등이 그 주인공이었죠.
Seascape near Les Saintes-Maries-de-la-Mer
생 마리 드라메르의 바다 풍경


이 그림은 반 고흐가 해변에서 직접 바다를 바라보며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물감 층에서 모래 알갱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잠시 머물렀던 어촌 마을, 레 생트마리 드 라 메르(Les Saintes-Maries-de-la-Mer)로 떠난 여행 중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캔버스에 파란색과 흰색을 과감한 붓질로 칠했을 뿐 아니라, 녹색과 노란색을 팔레트 나이프로 바르며 파도 속 빛의 느낌을 섬세하게 포착했습니다.
반 고흐는 지중해의 색감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햆습니다.
“지중해는 고등어 같은 색이야. 그러니까 계속 변하지. 어떤 땐 초록인지 보라색인지 모르겠고, 어떤 땐 파란색 같다가도, 금세 반사된 빛에 분홍빛이나 회색빛이 돌기도 해.”
그림 앞쪽에는 선명한 붉은색으로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는 이를 '녹색 속의 붉은 음표'처럼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The Harvest
라크로의 추수


이 그림에서는 프랑스 남부 아를 주변의 평평한 들판이 얼마나 건조하고 더운지마저 느껴질 듯합니다. 반 고흐는 여름날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푸른 하늘의 짙은 청색과 땅의 노랑, 초록빛을 조화롭게 사용했습니다. 그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밀밭에서 며칠 동안 작업을 이어갔고, 단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10점의 유화와 5점의 드로잉을 완성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작업 중 가장 생산적인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풍우로 수확기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반 고흐는 농부의 삶과 땅에서의 노동을 보여주고 싶어 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수확의 여러 단계를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는 절반쯤 베어진 밀밭과 사다리, 수레 몇 대가 보입니다. 멀리에는 수확 중인 농부의 모습도 보이죠. 그래서 그는 이 작품에 프랑스어로 ‘수확’을 뜻하는 La moisson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겼고,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캔버스는 다른 모든 작품을 압도할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Fishing Boats on the Beach at Les Saintes-Maries-de-la-Mer
생트 마리 해변의 고깃배


이 어부들의 배가 왜 조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나요? 모래사장의 불규칙한 표면과 비교해 보면, 배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배는 강한 윤곽선 안에 균일한 색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죠. 게다가 배들은 해변에 그림자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반 고흐가 소장하고 있던 일본 목판화에서 익숙하게 본 스타일입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해변에서 직접 그리고 싶었지만, 어부들이 매일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가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해변에서 배들의 스케치를 한 뒤, 집에서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The Yellow House (The Street)
노란 집


1888년 5월,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한 집에서 네 개의 방을 빌렸습니다. 이 그림 속 초록색 덧문은 그가 살던 곳을 보여줍니다. ‘노란 집’으로 이사한 직후,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 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스케치를 보내며 이렇게 썼습니다. “햇빛 아래 빛나는 이 노란 집들은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비교할 수 없는 파란색의 신선함이 있어요.” 반 고흐 자신이 ‘거리’라고 부른 이 작품은 그의 바로 주변 환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왼쪽에 있는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고, 그의 친구이자 우체부인 조셉 룰랭의 집은 두 번째 철교 너머에 있었습니다. 빈센트는 마침내 ‘노란 집’에서 그림을 그릴 뿐 아니라 친구들도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 노란 모퉁이 건물을 예술가들의 집으로 바꾸어, 같은 뜻을 가진 화가들이 함께 살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하려 했습니다.
Sketch of Starry Night Over Rhône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이 그림은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 「론 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의 스케치입니다. 이 스케치는 빈센트 반 고흐가 외젠 보흐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되었으며, 원래는 고갱에게 쓴 편지의 일부로, 반 고흐가 삭제하고 보내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The Outskirts of Koshigaya in Musashi Province, from the series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후지산 36경(일본어: 富士三十六景, 후지 산쥬-로쿠케이)은 일본 우키요에 화가 히로시게가 제작한 두 가지 목판화 시리즈의 제목입니다. 이 시리즈는 다양한 계절과 날씨, 여러 장소와 거리에서 바라본 후지산을 담고 있습니다. 1852년에 산오야 기헤이가 출판한 첫 번째 시리즈는 가로형인 츄반(중반) 사이즈로 제작되었고, 1858년에 츠타야 키치조가 출판한 두 번째 시리즈는 세로형인 오반 사이즈로 제작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주제는 이전에 호쿠사이도 다룬 바 있는데, 그는 1830년경부터 1832년까지 제작한 「후지산 36경」과 1834년부터 1849년까지 3권으로 출간된 「후지산 100경」 시리즈를 통해 표현했습니다.이 목판화는 현재의 가나가와시(神奈川市)에 해당하는 무사시국(武蔵国)에서 바라본 후지산을 그린 것으로, 1858년 두 번째 시리즈에 포함된 작품입니다.
Cherry Blossoms and Shrike


반 고흐는 ‘가초가(花鳥画)’라고 불리는 이러한 일본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일본 화가들은 자연에서 주제를 자주 가져왔는데, 이 시리즈의 새와 꽃이 함께 그려진 작품이 그 예입니다. 전통적으로 꽃과 새는 시와 함께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화려한 목판화들이 벽이나 병풍에 붙여져 실내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반 고흐 역시 일본 목판화를 자신의 방 벽에 걸어 두었으며, 그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세밀한 표현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Tulip Fields near The Hague


(이 작품은 네덜란드 전쟁 전후 회복 미술품 컬렉션(네덜란드어: Nederlands Kunstbezit-collectie)의 일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회수된 작품들을 포함하며 네덜란드 정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반 고흐 미술관에 대여 중입니다.)
클로드 모네는 네덜란드의 화려한 구근 꽃밭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886년 초봄, 그는 친구에게 이 광경을 ‘우리의 형편없는 색깔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편지로 전했습니다. 모네는 이전에도 네덜란드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꽃의 바다를 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그는 테오 반 고흐가 일했던 미술상 부수도 발라동 & 씨(Boussod, Valadon & Cie)를 통해 이 그림을 팔았습니다. 아마 그의 형 빈센트도 그곳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빈센트는 점차 모네의 빠른 붓터치와 밝은 색채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The Palais de Justice, Seen from the Pont Notre-Dame


오귀스트 르페르는 파리에서 태어나 활동했으며, 1889년에 제작된 「법원 궁전(The Palais de Justice)」을 만들 당시 그는 동시대 최고의 판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부드럽고 광택 있는 종이에 섬세하게 어우러진 액체 같은 색채로 표현된 이 목판화는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목판화 기법을 르페르가 완벽하게 구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다리를 건너는 인물을 자주 등장시켜 대기감 넘치는 구도를 선보인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동양의 영향은 빈센트 반 고흐와 클로드 모네 등 여러 화가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Wild Roses

Vincent van Gogh (1853 - 1890), Saint-Rémy-de-Provence, May-June 1889
oil on canvas, 24.5 cm x 33.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이 들장미 그림은 보기에는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이때 반 고흐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프로방스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죠. 그리고 병원 정원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했습니다.
반 고흐는 연약한 꽃잎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초록색 잎사귀는 다르게 다루었습니다. 잎사귀를 무거운 파란색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색면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Daubigny's Garden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uvers-sur-Oise, June 1890
oil on canvas, 51 cm x 51.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Landscape at Twilight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uvers-sur-Oise, June 1890
oil on canvas, 50.2 cm x 101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반 고흐는 오베르 근처 들판에서 저녁 풍경을 그렸는데, 그곳에서 마을의 성이 보였습니다. 그는 배나무의 얽힌 검은 가지들을 빠르고 힘찬 검은 붓질로 표현했습니다. 이로 인해 어두운 나무들과 밝게 빛나는 노란 하늘 사이의 대비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 그림은 가로로 길게 펼쳐진 구도로 인해 마치 파노라마처럼 보입니다. 가로 길이는 1미터, 세로는 50센티미터입니다. 1890년 6월부터 반 고흐는 이와 같은 크기의 작품을 총 13점 그렸는데, 그중 한 점을 제외한 모두가 풍경화였습니다. 그는 큰 두루마리에서 직접 캔버스를 잘라 사용했습니다.
Landscape with Houses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uvers-sur-Oise, May 1890
pencil, brush and oil paint and watercolour, on paper, 44 cm x 54.4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프랑스)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초가지붕이 있는 오래된 농가들이 남아 있어, 시골 풍경이 한층 더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서 그는 물결 모양의 윤곽선을 가진 초가지붕 집들을 그렸습니다. 먼저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지만, 그 후의 그림 밑그림을 아주 정확히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곳곳에 아직도 연필 자국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늘에는 연한 파란색 수채화를 사용했고, 나머지 부분은 묽게 희석한 유성 물감으로 넓게 붓질해 표현했습니다.
Butterflies and Poppies

Vincent van Gogh (1853 - 1890), Saint-Rémy-de-Provence, May-June 1889
oil on canvas, 35 cm x 25.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먼저 꽃과 나비를 그렸고, 그 뒤에야 파란 배경을 채웠습니다. 파란색 넓은 붓 자국이 때때로 꽃의 초록 줄기를 덮고 있는 것을 통해 그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캔버스 일부는 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맨 천이 보이게 한 부분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녹색 톤을 사용해 얽힌 줄기와 잎, 꽃잎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반 고흐는 섬세한 양귀비의 생기를 능숙하게 포착했으며, 몇몇 봉오리는 막 터질 듯한 모습입니다.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반 고흐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강력한 내구성으로 안전하게 보호하고, 최고의 인쇄와 색감으로 충실히 재현하며, 명작이 손끝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컬렉션이 여러분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는 데 영감이 되길 바라며, 실패란 없고 오직 소중한 경험뿐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라이노쉴드 x 반 고흐 미술관 컬렉션의 휴대폰 케이스, GRIP, 에어팟 케이스 등 전체 시리즈를 여기에서 만나보세요.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반 고흐 미술관 공식 웹페이지 를 방문해 보세요.